이태원 계단장

2012년 우사단마을에 와서 가장 처음 하고싶었던게 플리마켔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짐 바리바리 싸서 멀리 초상화 그리러 다니는게 귀찮았으니까요.  

20년간 재개발 예정지였던 이곳은 몇몇 주민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슬럼화를 피할 수 없었고,상권의 중심이었던 마을은 어느덧 가난한 이주민들의 터전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이곳은 자랑할게 많은 멋진 곳 이었습니다. 이대로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고 재개발 되어 없어진다면 이 도시의 역사는 누가 기억하나 싶어,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이 동네를 기억하고, 좋아하기 위해 친구들과 의기 투합해 재밌는 일들을 하나씩 해 보기로 합니다.

스크린샷 2015-08-31 오후 8.48.59
그래서 시작된 <이태원 계단장>

처음부터 순탄하지는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태원은 알아도 우사단마을은 몰랐으니까요. “이슬람 사원이 있는 동네입니다” 라고 해도 생소한건 마찬가지. 그래서 첫번째 계단장은 우리 모두의 인맥을 총 동원합니다. 10년간 장돌뱅이 하면서 알게된 제작자, 아티스트, 장사꾼들 전부 다 연락 돌려서 “다른건 몰라도 재미는 있을테니 한번만 와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w4-1

23만명은 다소(…) 과장(…)이지만

 

상권으로 단점이었던 높고 외진 입지를 ‘낭만적인 장소’로 바꾸기 위해 경치가 멋진곳을 선정하고, 마을 사람들부터 놀러온 사람들까지 모두 다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촘촘한 이벤트를 집어넣었습니다. 이 날 친구들끼리 성공적인 장터라고 자화자찬을 했고, 입소문이 빠르게 퍼져 일년만에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오는 장터가 되어버렸습니다.

wf_7755
계단을 장식할 깃발도 만들고
11
마을 캐릭터인 우깨비로 풍선도 만들고
모두 모여 청소도 하고요
대한민국이 텅텅 빌 정도로…
계단장날 만큼은 사람이 많았습니다.

이렇게 동네 친구들이 모여 만든  계단장이 3년차가 되었을때 고민에 빠지게 됐는데, 처음 기대했던 것 보다 너무 유명해진 덕분에 욕심을 부리는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이벤트성 행사라 계단장 하는 날 이외에는 유동인구가 없다는걸 알면서도 일부 건물주와 부동산 업자들이 월세를 2~3배씩 인상하는 현상이 일어난 것 입니다.

재개발 구역이라는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동네에서, 평당 월세가 다른 상업지구만큼 비싸지자 기존 세입자들의 급속한 이탈로 이어지게 되어 계단장 운영진들은 장터를 멈추기로 결정합니다. 계단장을 빌미로 ‘유동인구 많은 동네’로 포장하는 투기 세력을 멈출 방법이 달리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일을 두고 구청과 시청에 접촉해 오랜 시간 논의해보았으나 당장 해결 가능한 방안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2015년 겨울에 계단장 중단을 선언하고, 2016년 가을 완충 역할을 위한 마지막 계단장을 치룬 뒤 모든 활동을 중단하게 됩니다.

안녕, 계단장.

마지막 계단장을 치루고, 이제 잠정적으로 계단장은 더이상 열리지 않을 예정입니다. 과분한 사랑과 관심을 받았지만 이렇게 막을 내릴 수 밖에 없어 아쉽습니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